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다사자 작전 (문단 편집) == 계획 수립 == 1940년 6월에 이르자 [[프랑스 제3공화국]]이 만회할 수 없는 패배의 길로 빠졌다는 것을 확신한 나치 독일의 육군과 해군은 이전에 만들어놓은 영국 본토 상륙작전의 연구안을 다시 꺼내서 재검토를 하기 시작하고 공군의 경우에도 새롭게 영국 본토 상륙작전의 연구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1940년 6월 30일에 [[국방군최고사령부]](OKW)의 [[알프레트 요들]] 작전부장은 정세 검토 회의의 결과물로 [[대영제국]]에 대한 향후 대응 방안을 6개로 정리해서 보고한다. * 외교적 교류 - 평화협상안으로 이미 윈스턴 처칠의 항전선언으로 막힌 상황이다. * 경제 봉쇄 - [[U보트]]를 사용한 [[통상파괴전]]으로 이미 [[대서양 전투]]가 시작된 상황이다. * 공포 폭격 -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공포 효과를 내서 전쟁을 종결짓자는 것으로 이미 [[안트베르펜]] 같은 곳에서 실시한 바 있으며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결국 실행된다. * 직접 침공 - '''바다사자 작전'''을 말한다. * 간접 접근 - 영국이 지배하는 [[지브롤터]]나 영국이 사실상 지배하는 [[이집트 왕국]]같은 지역을 노리자는 것으로 [[펠릭스 작전]]같이 구상되거나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일부분 실현된다. * 방어 전략 - 영국을 방치해놓고 전쟁 동원을 대규모로 해제한 후 국내 경제기반을 강화하는 것으로 영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기에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육군, 해군, 공군의 상황도 동시에 설명되었다. 나치 독일 육군의 경우에는 영국 본토에 성공적인 상륙만 할 수 있다면 그 뒤의 전과 확대나 영국의 항복은 충분히 받아낼 수 있다고 보았으며 경제 봉쇄나 공포 폭격만으로는 영국의 항복을 받아낼 수 없고 영국 본토가 향후 연합군이 유럽 대륙 방향의 반격을 할 기지가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영국 본토에 직접 상륙하는 안을 많이 지지했다. 나치 독일 해군의 경우에는 이미 [[노르웨이 침공]]으로 보유한 군함의 상당수가 격침되거나 손상당한 상태라 영국 본토 상륙작전을 진행한다면 [[비스마르크급 전함]] 2척이 모두 취역했을 것으로 보는 시기인 1941년 봄에 실시하는 것이 좋으며 1940년에는 해당 작전을 실시할 경우 전력의 차가 너무 심해서 영국의 [[본토함대]]와 맞설 수 없으므로 작전 실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더해서 해군 작전부는 수송능력 불충분과 날씨 문제도 거론하였다. 상륙 작전에 투입될 최소한의 수준인 10만명 이상의 병력과 물자와 장비를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지려면 최소한 1940년 8월이 지나야 간신히 가능해지며 [[도버 해협]]의 날씨상 상륙작전이 가능한 시기는 길게 잡아봐야 1940년 9월 말이 한계이며 10월 이후에는 날씨가 거칠어져서 불가능함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해군은 상륙작전보다는 경제 봉쇄와 간접 접근을 선호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당시의 U보트의 숫자 및 대서양까지 가서 통상파괴전이 가능한 숫자를 따져볼 경우에는 대서양에서 항상 전개 가능한 숫자가 고작 15척 정도가 한계이므로 경제 봉쇄를 하기에는 잠수함의 숫자가 부족하므로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나치 독일 공군의 경우에는 [[헤르만 괴링]]이 [[공군최고사령부]](OKL)를 통해서 의견을 제시했다. 경제 봉쇄는 효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너무 걸리며 상륙작전을 실시하기에는 비용 및 희생이 과다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치 독일 공군은 힘이 있으며 이미 영국은 [[됭케르크 철수작전]]에서 보듯이 약해지고 겁에 질려 있으므로 공포 폭격을 실시함으로서 항전 의지를 날려버리고 평화 협상에 나서도록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보고를 받아본 히틀러는 6개 안중 어떤 것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1940년 6월 30일의 회의에서는 [[독소전쟁]]을 대비해서 [[바르바로사 작전]]을 연구하라고 [[육군최고사령부]](OKH)에게 명령을 내리는 뜬금없는 지시를 내렸다. 물론 히틀러는 영국과의 외교 협상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 나치 독일 공군이 영국의 도시를 폭격하는 것을 금지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평화 협상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나마 1940년 7월 19일에 히틀러가 독일 국회에서 한 연설이 노력이라고 볼 수는 있는데 그것도 평화인가 전면적 파괴인가 하는 수준의 반쯤 협박 성향의 연설이라 진정한 노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해당 회의에서 나치 독일 육군 총참모장인 [[프란츠 할더]]는 [[에른스트 폰 바이츠제커]]로부터 히틀러가 소련 침공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1940년 7월 1일에는 오토 슈니빈트 (Otto Schniewind) 제독을 만나서 논의한 결과 서로의 입장차는 유지하였으나 둘 다 상륙작전 실시 전에 [[제공권]] 획득이 필요하며 [[기뢰]]와 U보트가 영국 해군의 위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임에는 동의했다. 오토 슈니빈트는 추가적으로 날씨 문제를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1940년 7월 2일에 국방군최고사령부는 히틀러가 특정 조건이 이루어진다면 영국 본토에 상륙작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나치 독일군 전체에 영국 본토 상륙작전에 대한 예비 계획을 시작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첫번째 조건은 제공권 확보이며 구체적으로 나치 독일 공군에게 언제까지 제공권을 확보할 것인지를 질문했다. 1940년 7월 10일에 프란츠 할더가 [[에리히 마르크스]]에게 소련 침공 계획을 수립할 준비를 하라고 요청한 후 나치 독일 공군에게서 답변을 받았다. 답변의 내용은 나치 독일 공군이 [[영국 공군]]을 제거하며 항공기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산업과 시스템을 박살내며 [[영국 해군]]에게도 타격을 준다는 것이었다. 1940년 7월 11일의 회의에서 국방군최고사령부에게 제출된 나치 독일 공군의 보고서에서는 제공권을 확보하는데 14일에서 28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한다고 적혔다. 그리고 영국이 소련과 뭔가를 논의한다는 소식도 따로 전달되었다. 같은 날에 나치 독일 해군의 수장인 [[에리히 레더]]는 히틀러를 방문한 자리에서 영국이 평화 협상에 나서게 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공군을 이용한 공격과 잠수함을 이용한 공격을 결합한 포위 공격이라고 히틀러를 설득했다. 히틀러는 영국 본토 상륙작전이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동의했다. 1940년 7월 12일에 알프레트 요들이 영국 본토 상륙작전에 대한 국방군최고사령부의 제안을 각서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엄연하게 바다를 건너는 상륙작전을 [[해협]]이라는 것만 생각하고 '''넓은 강을 건너가는 [[도강]] 작전''' 정도로 묘사해서 나치 독일 해군의 항의를 받게 된다. 1940년 7월 13일에 아돌프 히틀러는 프란츠 할더와 [[발터 폰 브라우히치]]를 만나서 육군최고사령부에서 만든 상륙작전안을 보고받았다. 램즈게이트(Ramsgate)에서 [[와이트 섬]] 주변의 라임만까지 8곳에 13개 사단으로 구성되는 26만명을 2 ~ 3일 사이에 모두 상륙시킨 후 제2파를 포함하면 총 40개 사단을 영국 본토에 상륙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당 안의 경우에는 나치 독일 해군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수송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안이라서 현실성이 없다시피 했다. 이런 상륙작전안을 받아든 히틀러는 평소처럼 작전에 대해 질문하지도 않았고 세부사항에 관심도 보이지 않았으며 작전 계획을 개선할만한 권장사항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냥 국방군최고사령부에게 준비를 시작하라고만 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해군최고사령부]](OKM) 산하의 해군 작전부(SKL)에 소속된 쿠르트 프리케 소장이 정리한 해군의 상륙 작전안은 좀 더 현실성이 있었다. 영국이 됭케르크 철수작전의 타격으로부터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을 노려서 가능한한 빠른 시기내에 영국 본토 남동부의 좁은 정면을 집중적으로 노려서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1940년 7월 16일에 히틀러는 총통지령 제16호를 발하고, 그 중에서 영국 본토 상륙작전의 구체적인 작전계획의 입안과 그 준비를 1940년 8월 중반까지 완료하는 일을 명령했다. 작전의 암호명도 바다사자로 확실하게 정해졌다. 이로서 바다사자 작전이 공식적으로 이름이 붙고 상세계획이 만들어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